Friday, December 30, 2011

"소크라테스식 문답법"과 "내가 무엇을 모르는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과 "내가 무엇을 모르는가"

나와 같은 90년대 학번 세대들은 "하버드대학의 공부 벌레들"과 거기서 나오는 킹스필드 교수 그리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기억하실 것이다 (혹은 이 티비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하트와 다른 여자 주인공의 로맨스만 기억하셔도 좋다).

내가 직접 겪기 전에는 이런 소크라테스 문답법은 "끊임 없이 질문을 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외에는 나에게 의미가 없었는데, 막상 겪게 되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다.

나의 경험을 말하자면,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들은 1L 과정-소위 기본법 과목 팩키지를 들으면서 이름도 비슷한 Greenfield교수를 만나게 되고, 여기에서 소크라테스 문답법을 겪게 되면서 "아프게" 이 모든 것을 느끼게 된다. 30명정도가 듣는 소 강의실에서 한학기에 3번정도 교수의 cold call을 견디어 내는 것이 이번 학기 강의의 목표라는 것을 미국 친구가 사전에 이야기해 주었지만, 처음에는 생각보다는 할만하군..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데, 그 call on이라는 것이 매번 30분에서 40분동안 교수가 나 한사람을 잡고 끊임 없이 질문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그 막막함은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라는 한마디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수업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예컨데, 교수가 수업중에 내 이름을 부르고, 누구대 누구라는 케이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라고 시키고 내가 대답을 하면, 그 다음에는 이 케이스에서 법원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렇게 판단했는데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 본다. 

내가 만약 이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이야기하면, 그럼 그 후속 판결에서는 비슷한 사안에서 다르게 판결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느나고 묻고, 내가 그 후속 판결은 이런 이런 사안에서 앞서 판결과 다르다고 이야기하면, 그럼 이런 이런 사안을 공유하는 후속 판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묻는다.

만약 내가 처음의 판결에 대해서 틀린 판결이라고 하면, 그 틀린 논거를 말해야 하며, 교수는 그 근거되는 판결은 이런 점에서 앞서 판결과 다른 것 아니냐는 공격을 하게 되고, 나는 다시 그 판결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판결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끊임없는 질문과 답으로 이어지는 수업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수업이 한국식 수업과 가장 크게 차이나는 점은, 교수가 "강의"를 하지 않고 "질문"을 한다는 점이다. 교수는 진도표를 사전에 나누어 주고 교재를 미리 공부해 올 것을 요구하는 대신 수업시간에 기본적인 내용은 학생들이 미리 공부해 온 것을 전제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국식 법학 교육 (요즈음은 로스쿨로 바뀌어 모르겠지만)에서 암기를 중요시하는 것 (아니라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모든 것은 상대적이므로...)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내가 배워야 할 black letter rules (판례법이라든지 진짜 "법규정")은 언제 배우냐는 의문에 대해서 교수는 너무도 당당하게 "로스쿨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지 법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라고 답을 한다.

법은 졸업후에 바시험(변호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BarBri등을 통해서 배우면 되는 것이고 지금은 "think like a lawyer"가 너희들의 목적이라고 강조하는 할아버지 교수였는데, 지금은 그 이야기가 이해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동료 그리스 시민들을 괴롭혔고, 결국에는 젊은이들을 미혹한 죄로 사형을 당한다. 소크라테스와 이야기를 마친 사람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자신이 무지했다는 것을 깨닫고, 소크라테스를 좋아하거나 미워했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는 소크라테스를 좋아했을 것 같다.

이런 수업의 장점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실제로는 모르면서 "안다고"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이 쌓이면 사업에서/투자에서/인생에서 생각보다 일이 "안풀리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도 이런 부분이 많았다고 지금 느끼고 있다).

이 수업 이후로 나는 항상 내안의 소크라테스를 두고, 끊임 없는 질문을 하려고 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순간, 워렌 버핏이 말하는 투자의 범위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미국 로스쿨에서 얻은 것은 이러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 아는 것이다.

p.s. 아쉽게도 이러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미국 로스쿨에서도 이제는 점차 없어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너무나 가혹한 과정 (자존심에 큰 상처를 되죠..필연적으로)에 대해서 신세대의 반감이 크고, 필연적으로 교수와 학생의 부담이 크며, 학교 측면에서도 스몰 클래스를 두어야 하는 등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기에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2 comments:

  1. 안녕하세요? 이화여자대 산업디자인전공 학생입니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과 '내가 무엇을 모르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인상깊게 읽었어요. 저는 문답법을 통한 자기이해의 과정, 의사결정론 그리고 그로 인한 죽음학(죽음으로 인해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유한한 삶 동안 더 의미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에 대해 호기심이 있어서 조사중이었어요. 이러한 과정(문답법)을 통해 더 좋아지는 경험을 해보신 분들께 설문을 해보고 싶어서 검색 중에, 그노시스 님의 글일 읽고 여쭤보고 싶은 내용들이 있어서 댓글 남겨보아요 ^^ 메일 보내기 기능이 제한되어 있어서...혹시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다면, 이메일을 통해 궁금한 점을 여쭤볼 수 있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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