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29, 2012

크로니클_내가 "아저씨SF"를 좋아하는 이유

한동안 바쁘게 살다가 이제서야 글을 뽑아낼 여유가 생겼다. 나에게 "치유"인 블로그 글쓰기를 거의 한달이나 미루어 놓았다가, 이제서야 겨우 글을 올릴 시간을 찾게 된 것이다. 방치해 놓은 블로그를 그래도 꾸준히 방문해 주시는 분들을 보니 왠지 국민학교 (이제는 초등학교지만)때 교실 뒤에 걸어 놓은 "못그린 내그림"을 그래도 누가 봐 주던 것이 생각나는 것은,  내가 어느덧 이 블로그에 정을 많이 붙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 스스로 생각해 봐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읽는 사람을 위하는 측면도 있지만 (독자를 의식 안한다면 거짓말이고, 나도 내 글을 "어느 정도" 많은 사람들이 읽어 주었으면 한다)  자기 치유가 되기 때문이다. 머리속에 이리저리 생각이 많을 때, 한창 몰입하여 무엇인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것을 어디 한곳에 조용히 내려 놓고 남겨두고 싶을때,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쓴다. 그리고 조금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게으름을 피우곤 한다.

오늘은 SF 이야기를 해보자. 원래 올리려고 하였던 주제는 "당신이 믿고 있는 진실은 어느 차원에 속해 있나? (부제 : 내가 주식투자를 하면서 느낀점)"인데, "철학이 밥벌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을 담은 글이다. 하지만,  일단은 이 영화의 여윤이 너무 커서 이곳에 "못그린 글 하나"를 남겨 놓으려 한다.

(결혼을 미대생과 하고 나서 얻은 깨달음은 "내가 정말 그림을 못그렸다"라는 것이다. 와이프의 어렸을 적 그림대회 표창장이나 무심코 장난삼아 그려주는 그림을 볼 때 느껴지는 재능의 차이는 역시 인간은 재능면에서 "평등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나마 글쓰는 것은 내가 더 좋아하니 여기다 "못생긴" 글 하나 남긴다).

얼마전에 영화 크로니클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아직 미개봉인 (3월 15일 개봉 예정이라고 나와 있는) 영화인데,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집 앞의 한산한 극장에 "터벅터벅" 가서 본 영화이다.  이런 "터벅터벅"느낌은, 미국의 중소도시에 살면 느끼는 장점이자 단점인데, 영화관이 한산하다보니 정말 어렸을적 한국에서 느꼈던 (대학생때까도 느겼던) "흥겨운" 기분이 없는 영화관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없이 "가볍게 영화나..."하면서 보는 그런 느낌이고 덕분에 예매, 주차, 주차권 이런 것들은 신경쓸 필요가 없어 좋기는 하다.(그런면에서 학부때 봉사리 근처의 티파니 씨네마를 자주 이용하였던 나는 이런 "터벅터벅" 분위기를 어렸을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영화는 소위 "found footage"방식으로 되어있는데, 이 방식은 등장인물이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찍은 영상을 나중에 관객들이 보는 것과 같은 양식으로 (영화 블레어 위치같은 가짜 다큐멘타리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10대 SF" 라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라서 별 기대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므로 영화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영화가 미국 SF에서 흔히 나오는 "슈퍼 히어로"물이 아니라 3명의 주인공들의 성장과 아픔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세명의 주인공들의 성격 (리더형  A, 사교성이 좋은 B, 불우한 가정환경과 외로움을 지닌 C)과 가족 문제, 그리고 그들에게 힘이 주어졌을 때를 다룬 영화인데, 초능력이 주는 볼거리와 함께 가족 폭력과 외로움, 그로 인해 겉도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10대 SF"가 아닌 특히 "아저씨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기 때문에  못 느끼는 문제점을 비틀린 현실을 통해 잘 보여주기 때문인데, 이 크로니클에서는 특이하게도 "10대 SF"를 기대하고 갔다가 "아저씨 SF"를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이 "10대 SF"와 "아저씨 SF"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편의상 주인공 "10대"가 "즐거워"하는 SF는 "10대 SF", 주인공 "아저씨"들이 "괴로워"하면 "아저씨 SF"라고 일단 해두자. 예를 들어 보자면 미국의 슈퍼히어로중에서도 "슈퍼맨"은 주인공이 "즐거워"하기 때문에 10대 SF에 가깝고 (비록 주인공이 아저씨이지만), "스파이더맨"은 주인공이 "괴로워"하기 때문에 "아저씨SF"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슈퍼맨도 일상 생활에서 여러 불만이 많아 괴롭다고 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예컨대, 여친인 로이스 레인의 마음을 얻기가 힘들다든지 , 직장 상사가 "갈군다"라던지)기본적으로는 슈퍼맨은 SF 적인 막강한 힘에 눌려서 괴로워 하지는 않는다. (스몰빌 팬들은 이에 반박하겠지만, 그런면에서 스몰빌은 좀더 아저씨물에 가깝다고 해 두겠다).

한편 스파이더맨은 원작 만화 자체의 대사가 굉장히 시니컬한 편이고, 주인공은 항상 힘이 주는 무게에 괴로워 한다. "내가 이시간에 돈안벌고 돈도 안되게 사람들이나 구하고 있다니"라는 질문은  굉장히 "아저씨" 스럽고 (어떤면에서 "김구라"스럽고) 그런 면에서 아저씨인 나는 이런 아저씨물은 좋아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이 이하는 알아서 보시길...)




이 "크로니클"을 보자. 보통 10대들이 초능력-포스터를 보면 세 사람이 공중에 떠 있다-을 얻으면 굉장히 신날 것 같다. 이 영화도 초기에는 10대들의 흥분과 볼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여기까지는 뭐 볼거리도 좋고 그냥그냥 볼만한 영화이다. 아저씨SF로 변하는 부분은,  주인공 C (폭력적인 아버지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오늘 내일 하는 어머니가 있는 가정에서 학교에 가서는  괴롭힘만 당하는 주인공)에게 세명중 가장 강한 힘이 주어졌을때이다. 초능력이 있는데도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에게 그냥 맞고만 있어야 할까? 자기를 놀리고 괴롭히는 친구들에게도 그냥 맞고만 있어야 할까? 가난한 집 아이에다 공부도 중간, 특기도 없는 아이라고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에게 힘이 생겼을 때 참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에서 주인공이 캠코더를 사는 이유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와 고등학교 동급생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카메라는 학교에 들고 가자마자 이리저리 돌려지다 땅바닥을 전전하게 된다. 

이런 장면을 보고 나면, 주인공 C가 "우리가 우리보다 힘이 약한 곤충을 죽일때 양심의 가책이 없는 것처럼, 사자가 사냥을 할때 죄의식이 없는 것처럼, 나보다 이제는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 내가 계속 참아야 할 이유가 뭐지?"라고 혼자 캠코더(그의 유일한 친구)를 향해 묻는 장면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부분이 내가 아저씨 SF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며 (주인공이 "괴로워"한다는 매우 단순한 구분이지만), 구구 절절이 학교 폭력, 사랑과 용서라고 이야기 하는 것보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로 현실을 뒤틀어 보았을 때 더 가슴에 와닿는 SF만의 장점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당신이 아저씨 SF를 좋아한다면-크로니클을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p.s. 역시 취향도 "평등"하지 않다. 내가 흥분해서 이영화를 보고 나서 간만에 대단한 영화를 보았다고 흥분해서 이야기 했더니, 옆에 앉아 있던 와이프는 정말로 그렇나고 오히려 믿기지 않는 눈치다. 이래서 결혼을 하나 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